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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관왕묘(東關王廟) - 보물 제142호

서울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동묘(東廟)앞역이 있습니다. 이 동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종묘(宗廟)랑 혼돈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종묘(宗廟)는 [여행/전통] - 종묘(宗廟) - 조선왕과 왕비의 안식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관왕묘(東關王廟)는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왕묘라는 뜻으로, 중국의 장수 관우(關羽)의 조각상을 두고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의 요청으로 선조34년(1601년)에 지었다. 명나라에서는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문묘(文廟)처럼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무묘(武廟)라 하여 크게 숭배하였는 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후기에 무묘를 많이 지었다. (출처: 동묘 안내문)


↓ 동관왕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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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關羽)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소설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촉(蜀)의 장수로 유비, 장비와 더불어 촉을 건국한 명장입니다. 삼국지에서 용맹하고 주군인 유비에 의(義)를 다하는 관우는 화웅과 일기토, 원소의 장수인 안량과 문추를 베고, 조조군의 5개 관문을 돌파하며 6명의 장수를 참하는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 등으로 유명합니다. 말년에는 오나라의 여몽의 계략으로 사로잡혀 참수당합니다.

↓ 동관왕묘 입구의 문을 들어서면 또 다른 문과 하마비(下馬碑: 大小人員皆下馬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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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모두 관우의 상(像)을 모신 사당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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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령소덕의열무안성제묘(顯靈昭德義烈武安聖帝廟)
- 한 건물에 2개의 편액이 붙어 있는 데, 그것은 
다른 곳에 있던 관묘의 편액을 떼어와 함께 붙여놓았다고 합니다.

顯靈 : 신령이 나타나다.
昭德 : 미덕(美德)이란 의미
義烈 : 올바로고 장함의 뜻
武安 : 명장에 대한 존경심으로 진나라 명장 백기와 조나라 이목을 무안군이라 했으며, 송나라 대관 2년에 관우를 무안왕으로 봉함.
聖帝廟 : 관우의 사당NIKON D800E | Pattern | 1/100sec | F/4.5 | 24.0mm | 2017:01:08 13:51:05


↓ 관우상(關羽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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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는 소설 삼국지로는 관우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옛날의 PC게임인 KOEI 게임 삼국지 II, III, IV 등에서 관우는 여포(呂布)의 무력(武力) 100 다음으로 의제 장비(張飛)와 더불어 무력 99를 자랑하는 장수이면서도, 무력뿐만아니라 통솔력과 두뇌도 출중하게 뛰어난 장수입니다.  


↓17세기 중국양식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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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역사는 강자의 관점에서 쓰여지게 마련입니다. 삼국지의 시대도 마찬가지로 정사(正史)에서는 위(魏)나라의 조조(曹肇)를 중심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촉(蜀)에 대한 부분은 자세한 기록들이 많지않은 데, 삼국지 연의를 지은 나관중(羅貫中)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시기를 반영하여 유비(劉備)를 중심으로 소설을 전개한 것이 아닌가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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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은 금나라 말, 명나라 초에 살았었는 데, 그가 생각하기에 한족(漢族)이 야만인인 몽골(금)의 지배를 받는 것을 보면서 과연 힘에 의해서 지배하는 것이 정의이고 정통인가?에서 출발하여 강자인 몽골의 지배를 받았지만 대의와 명분이 있는 나라가 정통성이 있다는 한족 중심의 역사의식으로 지어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강자인 조조는 악행을 많이 저지른 것으로 묘사되었고, 유비는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고 덕망이 있는 군주였으며 비록 위나라에 의해서 통일 되었지만, 촉나라가 더 정통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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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설은 지은이 마음이기 때문에 누가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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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에 대해서도 정사(正史)와 소설간에 차이가 많이 있다거나 이 동묘()가 세워진 역사적으로 배경이나 남의 나라 장수를 위한 사당으로 인하여 사대주의 등으로 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암튼, 종묘랑 동묘랑 헷깔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동묘 #사진 #전통 #관우 #동관왕묘 #무묘 #武廟

Posted by 자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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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지연 2017.01.23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관우를 모신다는 건 그만큼 중국의 영향력이 컸다는 거지요?
    왠지 씁쓸..
    (아무 먼 훗날, 중국에서 한류의 흔적이나 잔뜩 나와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