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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통

동묘(東廟) - 서울 동관왕묘(東關王廟) 서울 동관왕묘(東關王廟) - 보물 제142호서울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동묘(東廟)앞역이 있습니다. 이 동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종묘(宗廟)랑 혼돈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종묘(宗廟)는 [여행/전통] - 종묘(宗廟) - 조선왕과 왕비의 안식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관왕묘(東關王廟)는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왕묘라는 뜻으로, 중국의 장수 관우(關羽)의 조각상을 두고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의 요청으로 선조34년(1601년)에 지었다. 명나라에서는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문묘(文廟)처럼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무묘(武廟)라 하여 크게 숭배하였는 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후기에 무묘를 많이 지었다... 더보기
기념비전(紀念碑殿) -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기념비전(紀念碑殿) -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 사적 제171호 광화문(光化門) 사거리를 들어서면 이순신 장군님이 눈을 부릅뜨고 내려보십니다. 평상시에는 쫄아서 아무 생각없이 그냥 자나갑니다. 이 날은 쫄지않고 지나가다가 광화문 사거리 귀퉁이에 있는 건물을 봅니다. 기념비전(紀念碑殿)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작은 건물이 있습니다. 현판의 끝글자가 건물중에서 가장 높은 벼슬(?)을 가진 전(殿)이 붙어 있습니다. 뭔가 특별해보입니다. 옆에 설명글이 있습니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라고 적혀있습니다.이 비는 1902년(광무 6년)에 세워졌다. 비문에는 고종(재위 1863 ~ 1907)이 즉위한 지 40년이 된 것과 51세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것,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 더보기
보신각(普信閣) 보신각(普信閣) - 보신각 터(普信閣址)라는 이름으로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태조 4년(1395)에 처음 지어진 후 4번이나 불타 없어지고, 8번에 걸쳐 다시 지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1979년 8월에 서울시에서 지은 것으로, 동서 5칸·남북 5칸의 2층 누각으로 되어있다. 보물 제2호인 보신각종은 조선 세조 14년(1468)에 만들어져 원각사에 있다가, 절이 폐사된 후 광해군 11년(1619)에 현재의 보신각 자리에 옮겨졌다. 보신각종은 오전 4시에 33번, 오후 7시에 28번을 울려 도성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각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몸통에 균열이 생겨 더 이상 종을 칠 수 없게되자, 경복궁 안에 종각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지금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은 1985년 국.. 더보기
종묘(宗廟) - 조선왕과 왕비의 안식처 종묘(宗廟)종묘(宗廟)는 사적 제125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록일 1995년 12월 9일)에 등록된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종묘는 태조 3년(1394년) 10월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12월부터 태조 4년(1395년) 9월에 완공하였습니다. 임진왜란때에 불탄 종묘는 광해군 즉위하는 해(1608년)에 다시 지었습니다.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이 흩어진다고 하는 데, 혼은 정신, 백은 몸을 의미합니다. 왕과 왕비의 백(魄)을 모신 곳은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릉(陵)이라고 합니다. 몸을 떠난 혼(魂)이 의지할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상징물인 신주(神主) 또는 위패(位牌)라고 하여 혼을 담습니다.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 종묘(宗廟)입니다. (종이로 만든 신주를 지방이라고.. 더보기
경희궁(慶熙宮) 경희궁(慶熙宮) - 사적 제271호경희궁(慶熙宮)은 광해군 9년(1617년) ~ 광해군 15년(1623년)에 완성된 궁궐입니다. 경덕궁(慶德宮)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으나 영조 36년(1760년)에 경희궁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景福宮)의 서쪽에 위치하였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 불렀습니다. 경희궁은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과 더불어 조선의 3대 궁궐에 속하는 큰 궁궐이었으나 일제시대에 가장 철저하게 파괴된 궁궐이 되었습니다. 아래의 서궐도의 좌측 건물 일부만 현재 복원된 상태입니다. 경희궁은 조선시대 궁궐 중에서 현재 규모가 가장 작은 궁궐로 정전인 숭정전(崇政殿) 지역이 복원되어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되었으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다른 궁궐에 비하여 방문객이 거의 .. 더보기
우리나라의 궁궐(宮闕)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궁궐들입니다. 경복궁(景福宮) 경복궁(景福宮)은 사적 제117호로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 정궁)입니다. 1395년(태조 4년)에 창건하였으며,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여행/전통] - 경복궁(景福宮)[여행/전통] - 경복궁(景福宮) - 광화문(光化門)[여행/전통] - 경복궁(景福宮) - 흥례문(興禮門)[여행/전통] - 경복궁(景福宮) - 근정문(勤政門)[여행/전통] - 경복궁(景福宮) - 근정전(勤政殿)[여행/전통] - 경복궁(景福宮) - 경회루(慶會樓)[여행/전통] - 경복궁(景福宮) - 향원정(香遠亭) 덕수궁(德壽宮) - 경운궁(慶運宮) 덕수궁(德壽宮)은 사적 제124호로서 조선과 대한.. 더보기
창경궁(昌慶宮) 창경궁(昌慶宮)은 사적 제123호로 창덕궁(昌德宮)과 붙어 있으며, 또한 종묘(宗廟)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경궁은 일제시대에는 창경원(昌慶苑)으로 이름이 바뀌며 동물원, 식물원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1983년에 동물원과 식물원은 어린이대공원이로 옮기고 창경궁 이름을 되찾았습니다.창경궁은 주위에 전철역은 많습니다만, 정작 창경궁 근처에는 전철역이 없습니다. 따라서 전철역에서 가기 위해서는 한참을 걸어야 합니다. 저는 창덕궁을 방문후에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들어가는 매표소가 있으며, 이곳에서 추가적으로 입장권(1,000원)을 구매해서 들어갔습니다. 창경궁(昌慶宮)은 원래 세종(1418년)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곳을 성종 14년(1483년)에 대왕.. 더보기
창덕궁(昌德宮) - 후원(後苑) 창덕궁(昌德宮) 후원(後苑) 또는 비원(秘苑)은 창덕궁의 북쪽에 붙어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궁중 정원입니다. 궁원(宮苑), 금원(禁苑), 북원(北苑), 후원(後園) 등으로 불립니다. 창덕궁 후원은 창덕궁의 입장료(3,000원)와 별도로 추가적으로 입장료(5,000원)를 받습니다. 또한 매 30분마다 단체로 입장하며 입장객의 수가 제한이 되어 있어서 예약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안내원의 설명과 안내를 받으면서 같이 움직이지만 개별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몇 년전에는 안내원이 한국어로만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시간대별로 언어가 다릅니다. 그것도 모르고 창덕궁 입구에서 창덕궁 입장권과 후원 입장권(예약이 많이 되어 있어서 2시간 후에 후원은 입장가능하였음)을 함께 구매하여 창덕궁을 둘러보다가 시간에 맞.. 더보기
창덕궁(昌德宮) 창덕궁(昌德宮)은 몇 년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궁궐입니다. 궁궐 중에서 후원이 있는 유일한 궁궐로 늦가을의 아름다운 후원 모습을 상상하면서 찾았습니다. 창덕궁은 안국역3번 출구를 나와서 큰길을 따라 계속가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이 나옵니다(지도참조).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창덕궁의 관람시간은 봄(2월~5월), 가을(9월~10월)에는 09:00~18:00, 여름(6월~8월)에는 09:00~18:30, 겨울(11월~1월)에는 09:00~17:30입니다. 또한 매주 월요일은 휴궁이며, 입장은 관람 마감 1시간 전까지 가능합니다. 창덕궁(昌德宮)은 사적 제122호이며 태종 5년(1405년)에 세워진 궁궐로, 경복궁(慶福宮)에 이어 조선시대 두번째로 세워진 궁궐입니다. 경복궁이 주로 법궁으로 사용되었지.. 더보기
은행나무 - 성균관 가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무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단풍나무는 산을 울긋불긋 화려하게 물들여서 등산객들의 시선과 발길을 붙잡습니다.은행나무는 자생하는 나무가 거의 없어서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 하기에 산보다는 우리들 근처에서 가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특히, 은행나무는 수명이 매우 긴 나무라서 크게 자랍니다. 500여년을 살아온 성균관에 있는 은행나무입니다. 이 은행나무들은 천연기념물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은행나무(銀杏나무: ginkgo, maidenhair tree) [여행/전통] - 성균관(成均館) - 조선시대 최고의 고육기관 #은행나무 #성균관 #성균관대학교 #사진 #명륜당 #대성전 더보기
진주성(晋州城) 진주성(晋州城) : 사적 제 118호나의 고향 진주는 충절의 도시, 교육의 도시, 실크(비단)의 도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주하면 떠올리는 것은 촉석루, 진주성, 논개, 남강 유등축제, 소싸움(소싸움의 발원지), 진주대첩 등 일 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학년별로 돌아가면서 진주성의 후문인 호국사(護國寺), 창렬사(彰烈祠) 근처에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고,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하게 순국하신 분들을의 위패가 모셔진 창렬사(彰烈祠)에서 향사르고 묵념했던 그 곳!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 벌어졌던 곳, 진주성을 찾았습니다. 연일 무더위가 맹위를 날리며 더위에 대한 기록이 갱신되고 있는 2016년 8월 11일에 방문하였는 데, 날씨가 너무 덥고 평일이라 성안이 텅텅.. 더보기
덕수궁(德壽宮) - 경운궁(慶運宮),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 덕수궁(德壽宮) - 경운궁(慶運宮),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서울 시청 바로 옆에 있는 덕수궁은 조선시대 4대궁의 하나로 경복궁에 비해 궁궐로는 아주 작은 규모입니다. 도심의 한가운데 있으며, 덕수궁의 가까이에 시청역이 있어서 교통도 편리하여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 같습니다. 건물들 주위로 큰 은행나무, 회화나무들이 울창하여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어 한 여름에도 쉬엄 쉬엄 여유를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며, 넓지 않아서 모두 둘러보아도 힘들지 않습니다. 입장료도 저렴하여 어른은 1,000원이고 24세 이하, 64세 이상은 무료입니다. 관람시간은 09:00 ~ 21:00(입장시간은 09:00 ~ 20:00) 매주 월요일은 휴궁일입니다. (2016.07.23 기준)덕수궁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 더보기
성균관(成均館) - 조선시대 최고의 고육기관 여름의 무더위와 장마가 기승을 부리는 7월 23일에 비가 쏟아질듯 말듯한 흐린 날에 옛 성균관(成均館)에 들렀습니다. 날이 푹푹찌고 땀이 맺혔지만 너무 오랬동안 가보지 않아서 한번 들러보았습니다. 성균관은 보물 제14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적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입니다.성균관 내에는 대성전(大聖殿)을 중심으로 한 서울 문묘(文廟)가 있으며 이 곳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며, 명륜당(明倫堂)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는 장소로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의 역할하였습니다. 성균관은 1398년 태조7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화재와 전쟁으로 여러번 고쳐지었고, 1869년(고종 6년)에 크게 수리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성균(成均)"은 성(成)은 악.. 더보기
경복궁(景福宮) - 향원정(香遠亭) 향원정(香遠亭) 경복궁 내에서 향원정은 계절에 따라 풍경이 많이 바뀌는 곳 중에 하나입니다. 원래 정(亭)이라는 곳이 풍경 좋은 곳에 지어 경치를 즐기고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한 곳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처음 경복궁에 왔을 때에는 경복궁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이 건물이나 저건물이나 비슷해서 더 볼만한 것도 없네라고 하며 더 둘러보지도 않고 향원정까지도 오지도 못한 것 같네요. 여러번 경복궁을 가지만 가장 빨리 가 보고 싶은 곳이 향원정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회루도 멋있지만 향원정을 더 좋아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향원정의 변화를 방문하여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향원정(香遠亭)은 경복궁 후원에 있는 누각이다. 2층 규모의 익공식(翼工式) 기와지붕. 누각의 평면은 정육.. 더보기
경복궁(景福宮) - 경회루(慶會樓) 경회루(慶會樓) 경회루(慶會樓)(국보 제224호)침전인 강녕전 서쪽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외국사신 또는 군신간의 연회장소이며, 임금은 올바른 사람을 얻어야만 정사를 바로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경사스러운 모임이 있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외국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그 후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 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 더보기
경복궁(景福宮) - 근정전(勤政殿) 근정전(勤政殿)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이다.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月臺)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경복궁) 남쪽 행각의 가운데에는 3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근정문이 있으며 그 좌우에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고 동쪽 행각에는 융문루(隆文樓)가, 서쪽 행각에는 융무루(隆武樓)가 있다. 정전 영역의 입구인 근정문은 왕과 신하가 만나는 조참(朝參)행사를 하는 곳이다. .. 더보기
경복궁(景福宮) - 근정문(勤政門) 근정문(勤政門) 근정문(勤政門)은 정전인 근정전의 정문으로 정면 3칸, 좌우로 각각 1칸씩의 옆문을 배치한 중층 구조로 되어 있다. 보물 제8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근정문과 행각은 고종 4년(1867년)에 근정전과 함께 중건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금천교, 어구, 흥례문을 비롯하여 이곳도 해체ㆍ철거되었는데, 조선총독부 청사를 헐고 이 일대를 재건하면서 원래 모습을 찾았다.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일이 없는 평소에는 문을 닫아두었고 대신 관리들이 궁에 출입할 때는 좌우에 있는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을 이용하였는데, 음양으로 볼 때 태양을 뜻하는 문반 관료들은 동쪽의 일화문을, 그리고 달을 뜻하는 무반 관료들은 서쪽의 월화문을 통하여 출입하였다. (출처:위키백과) #.. 더보기
경복궁(景福宮) - 흥례문(興禮門) 흥례문(興禮門)광화문을 지나서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로서 이곳부터는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통제구역입니다. 광화문과 근정문의 중간에 있는 문입니다.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에는 백악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 즉,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어구의 중앙에 영제교(永濟橋)라는 다리가 놓여 있다. 어구(御溝)는 경복궁 뿐만 아니라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에도 있으며, 고려궁궐, 중국의 궁궐, 베트남의 궁궐에도 있어 동아시아 지역의 궁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구와 영제교는 근정문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들의 조회 시에 신하들이 도열할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영제교를 중심으로 북쪽에 2품 이상의 관원이 서고, 남쪽에 3품 .. 더보기
경복궁(景福宮) - 광화문(光化門) 광화문(光化門)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광화문은 조선의 법궁에 해당하는 궁궐의 정문으로서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마치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이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문으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문으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또한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두어 시각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1968년에 경복궁 정문의 위치로 다시 옮겼으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위치 또한 제자리.. 더보기
경복궁(景福宮) 경복궁(景福宮)은 대한민국 서울 세종로에 있는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 정궁)입니다.1395년(태조 4년)에 창건하였다.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이다. 풍수지리적으로도 백악산을 뒤로하고 좌우에는 낙산과 인왕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길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탄 이후 그 임무를 창덕궁에 넘겨주었다가 1865년(고종 2년)에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짓는 등 많은 전각들이 훼손되었으나, 1990년대부터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등 복원사업을 벌인 덕분에 복원 작업은 현재 부분 완료된 상태다.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 아미산 굴뚝 등은 훼손되지 않고 그대.. 더보기
서울 북촌 한옥 마을 IV 북촌8경 서울 북촌에 가면 한옥의 아름다움과 북촌 골목길을 구석구석 즐길 수 있는 '북촌 8경'이 있다. 서울시는 한옥 주거지 북촌을 서울의 대표적 문화관광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북촌을 가장 장 감상할 수 있는 지점 8곳을 지정하였다. 북촌의 중심적인 관광자원이라 할 수 있는 한옥 경관과 한옥이 주도하는 골목길 풍경이 주로 선정되어 있다. 북촌은 걷는 곳이다. 비밀을 간직한 듯 미로처럼 얽혀있는 북촌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자, 문화이자, 보물이다. 북촌 8경을 따라 걸으면서 마주하게 되는 골목길 풍경 속에서 깊은 역사와 굴곡진 세월의 한켠에서 묵묵하게 살아남은 북촌을 만나보자. 북촌 1경: 창덕궁 전경 북촌 2경: 원서동 공방길 북촌 3경: 가회동 박물관길 북촌 4경: 가회동 31번지 언덕.. 더보기
서울 북촌 한옥 마을 III 서울 북촌 한옥 마을의 현대 1970년대 : 학교이전과 북촌경관의 변화 1960년대 후반기부터 1970년대 전반기에 걸쳐서 시행된 영동지구 개발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강남개발이 이루어짐에 따라 강북지역의 인구가 강남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강북지역의 학교들도 강남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1976년 경기고가 이전하자 그 건물은 정독도서관으로 이용되었고, 1978년 휘문고가 이전하면서 1983년 그 자리에 15층의 현대건설사옥이 신축되었으며, 창덕여고가 1989년 이전한 뒤에는 헌법재판소가 들어섰다. 학교가 이전하면서 신축된 대규모 시설들은 북촌지역의 경관을 크게 바꾸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1980년대 : 경직된 한옥보존, 북촌길 개설 학교 이전지 개발에 따른 변화가 확산되면서 한옥의 보존필요성.. 더보기
서울 북촌 한옥 마을 II 조선시대의 북촌마을 - 세력가들의 주거지 북촌지역의 가장 큰 특성은 지형과 물길이라 할 수 있다. 북촌의 지형은 남쪽이 낮고 북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심해지며 네 곳의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물길은 계곡을 따라 흐르며 길들은 물길과 나란히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길의 형태는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남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북촌의 주요 남북가로를 이루고 있는 삼청동길, 가회로, 계동길, 원서동길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양의 중심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잡고 있고 북악과 응봉을 잇는 산줄기의 남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북촌은 예로부터 권문세가들의 주거지로 자리매김 해왔다. 1906년 호적자료에 따르면 북촌 전체인구 10,241명(1,932호) 중.. 더보기
서울 북촌 한옥 마을 I 2015년 7월 한창 더운 날에 서울 북촌 한옥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가족들과 다음주에 가기전에 사전 답사를 위하여 혼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가족과는 다음주에 가지 못했네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처음갔던 곳이라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한참 헤메었던 곳입니다. 북촌마을 다녀왔을 당시에는 블로그가 없었던 때라 오늘 사진 중심으로 올려봅니다. 다시 가 보지 않으면 위치도 헤깔려서 상세한 설명은 못 올리겠네요. 사진은 촬영한 순서대로 올립니다. 이리 저리 헤메면서 같은 곳을 또 가고 해서 반복된 사진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날은 다행이 더워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북촌마을의 형성과 변화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전통한옥이 밀집되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