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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통

종묘(宗廟) - 조선왕과 왕비의 안식처

종묘(宗廟)

종묘(宗廟)는 사적 제125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록일 1995년 12월 9일)에 등록된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종묘는 태조 3년(1394년) 10월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12월부터 태조 4년(1395년) 9월에 완공하였습니다. 임진왜란때에 불탄 종묘는 광해군 즉위하는 해(1608년)에 다시 지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이 흩어진다고 하는 데, 혼은 정신, 백은 몸을 의미합니다. 왕과 왕비의 백(魄)을 모신 곳은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릉(陵)이라고 합니다. 몸을 떠난 혼(魂)이 의지할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상징물인 신주(神主) 또는 위패(位牌)라고 하여 혼을 담습니다.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 종묘(宗廟)입니다. (종이로 만든 신주를 지방이라고 합니다.)


종묘는 종로3가 전철역에(1호선 11번 출구, 3호선 8번 출구, 5호선 8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입니다. 입장료는 1,000원(2017년 1월 현재)이며 매주 토요일에는 자유관람이며, 그 외에는 시간제 관람이라서 시간을 잘 보고 가야 합니다. 시간에 따라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궁궐과 달리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이 휴관일이니 확인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하마비(下馬碑) - 大小人員下馬碑 (대소인원하마비)

여기서부터 모두 말에서 내려라는 하마비(下馬碑)를 시작으로 종묘의 입구가 시작됩니다.


외대문(外大門)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입니다. 종묘의 건물의 특징 중의 하나는 건물이나 문에 현판이 없습니다. 또한 궁궐의 건물이나 문에 있는 꽃문양 등이 거의 보이지 않고 색상도 몇가지 색상으로 화려하지 않습니다.



재궁(齋宮) 일원
왕(王)과 세자(世子)가 제사를 위하여 머무르는 곳으로 의복을 갈아입거나 목욕 재계하는 곳입니다.

중앙은 왕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오른쪽은 세자가 머무르는 곳입니다.

좌측은 목욕재계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전사청
종묘 재례에 사용되는 음식을 만드는 곳입니다.


정전(正殿) - 국보 제227호
정전은 조선시대 19명의 왕 또는 황제의 신위가 모셔진 곳입니다. 이 곳은 업적이 뛰어난 왕이나 황제의 신위를 모시는 곳으로 실제로 왕이 아니었지만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경우에도 이 곳 정전에 모실 수 있습니다. 왕이 돌아가시면 정전에 모셨다가 4대가 지나서 왕의 업적을 평가하여 계속 정전에 모실 것인지 아니면 영년전으로 옮길 지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왕의 업적은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기 힘들기 때문에, 4대가 지나면 그 자손이 왕을 하면 정전에 머무르고, 대(代)가 끊기면 영녕전으로 옮겨서 모신다고 합니다. 


조선의 왕중에서 정전에 처음부터 모시지 않은 왕은 연산군과 광해군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다음 왕들이 반정으로 왕이 되면서 왕에서 군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살아서는 왕이 아닌 분도 정전(正殿)에 모셔져있습니다. 효명세자(孝明世子)는 사후에 왕으로 추존되었고, 고종황제때에는 황제(문조 익황제)로 까지 추존된 효명세자는 정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효명세자는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황제입니다.

효명세자의 사후 이름은
문조체원찬화석극정명성헌영철예성연경융덕순공독휴홍경홍운성렬선광준상요흠순공우근탕정계천건통신훈숙모건대곤후광업영조장의창륜행건배녕기태수유희범창희입경형도성헌소장치중달화계력협기강수경목준혜연지굉유신휘징수서우복돈문현무인의효명익황제 (文祖體元贊化錫極定命聖憲英哲睿誠淵敬隆德純功篤休弘慶洪運盛烈宣光濬祥堯欽舜恭禹勤湯正啓天建通神勳肅謨乾大坤厚廣業永祚莊義彰倫行健配寧基泰垂裕熙範昌禧立經亨道成獻昭章宏猷愼徽綏緖佑福敦文顯武仁懿孝明翼皇帝)
입니다.

건물의 길이만 101m가 넘는 정전입니다. 정전의 문은 정 중앙에서만 열 수 있습니다. 정 중앙의 문을 열고 나머지의 문들은 안에서 열어야 합니다. 정전의 전체 폭을 사진으로 담으려면 17mm이하의 광각 렌즈를 사용해야만 담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문밖에서...

중앙 건물의 좌측에서 태조 이성계로 부터 순서대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습니다.

임진왜란때 종묘는 불탔습니다만, 신주는 불타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극 드라마에서 신하들이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소서."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종묘는 신주로서 국란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신주라고 합니다. 따라서 가장 먼저 피난을 가는 것이 신주이기 때문에 불타지 않았다고합니다. 신주는 국가(왕권)의 존립을 뜻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묘사직(宗廟社稷)에서 종묘는 이 종묘입니다. 
사직(社稷)은 국토 또는 땅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뜻합니다. 땅과 곡식이 없으면 백성들이 살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사직 신께 제사를 제내는 곳이 사직단이며, 사직단은 현재의 사직공원이라고 합니다. 종묘사직은 왕권과 국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정전에는 왕과 왕비 등, 모두 49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규모가 작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4칸씩 늘렸다고 합니다.


영녕전(永寧殿) - 보물 제821호
영녕전은 좁은 정전을 보완하기 위하여 세종3년(1421년)에 건설하여, 정전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의 신주를 옮겼던 곳입니다. 영녕전은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의미입니다.


영녕전의 가운데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부터 아버지까지의 신주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모셨으며, 좌우의 낮은 건물에는 정전에서 모시다가 주로 자손이 끊긴 왕들의 신주를 모십니다.  중앙((목조, 익조, 도조, 환조), 좌(정종,문종,단종,덕종,예종,인종), 우(명종,원종,경종,진종소황제,장조의황제,의민황태자)에 모두 34위의 왕과 왕비의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종묘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


종묘는 조선시대의 역대 왕들의 신위가 모셔진 곳입니다. 정숙하고, 건물들도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겨울이라 잎이 떨어져 앙상한 나무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습니다. 넓지 않고 볼만한 것은 많지 않지만, 이곳은 500년 조선의 희로애락을 조상들께 알리고 정신적으로 조선을 이끌었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봄이 되어 나무들이 울창해지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토요일에 자녀들과 방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의사항 - 길의 가운데는 혼령의 길이기 때문에 가운데(특히, 기왓길)로 다니지 않습니다.

#종묘 #전통 #정전 #영녕전 #조선시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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